함부르크 SV 의 역사를 알아보자 제 2탄 !!
4. 2010년 초..
초반부터 고전했다. 바이에른 뮌헨에게 리그 원정에서 0:5으로 대패를 당했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1:3로 패했다. 헤르타 베를린 홈경기에서 손흥민이 리그 첫 골을 기록했지만 2:2로 비겼고 하위권이던 FC 쾰른과의 8월 27일 안방 경기에서도 손흥민이 2호골, 역전골을 기록했지만 맥빠진 수비를 보이며 3:4로 역전패, 초반부터 리그 18위로 추락했다.
그리고 이어진 베르더 브레멘 전에서는 2:0 패배, 묀헨글라트바흐에겐 1:0 패배로 0승 1무 5패로 강등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결국은 감독인 미하엘 외닝이 경질되었다. 성적이 성적인만큼 경질은 당연해보이나, 본질적인 문제는 감독인 외닝이 아닌 단장인 프랑크 아르네센이란 지적이 있다. 이유인즉슨, 첼시 디렉터 출신인 아르네센이 분데스리가에 대해 무지할 뿐더러 팀을 첼시 유스 출신들로 가득 채워 첼시 2중대로 비판받았다.
외닝 경질 후 로돌포 카르도소 감독 대행 체제로 치러진 첫 경기에서 슈투트가르트 원정에서 2:1로 이기며 시즌 첫 승을 올렸다. 그러나 카르도소 감독대행은 지도자 자격증이 없어 2경기 만에 물러나게 되었고, 아르네센 단장이 임시 감독이 되었다. 아르네센 임시 감독 하에서 프라이부르크 원정에서 손흥민의 시즌 3호골을 포함, 2:1로 이겨 시즌 두 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마침내 새 감독으로 FC 바젤의 감독이었던 토르스텐 핑크가 발탁되었다. 토르스텐 핑크 감독이 부임한 후 남은 전반기 8경기에서 2승 6무 무패를 기록했다. 전반기는 4승 7무 6패, 13위로 마감했다. 외닝 경질 후 4승 6무 1패의 성적을 거두며 외닝 감독의 처참했던 초반 6경기와 비교하면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후반기 첫 경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홈경기에서 레반도프스키와 브와시치코프스키에게 2골씩을 허용하며 1:5 대패를 당했다. 8경기 무패 행진도 마침표를 찍었다. 그나마 종료 4분 전 게레로가 만회골을 넣으며 영패는 겨우 면했다.
2012년 2월 5일 바이에른 뮌헨과 경기에서 손흥민이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면서 1:1 무승부를 거뒀다. 그리고 27라운드까지 6승 9무 12패로 16위 강등권에 여전히 머물렀다. 그나마 13위와 승점 차가 1점뿐이라 강등권 탈출 희망이 있었다.
결국 마지막 라운드를 남겨두고 15위로 아슬아슬하게 잔류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2001-02 시즌 11위 이후로 10년만에 리그 10위 바깥으로 내려간 부진을 보였다.
이번 시즌에 파올로 게레로와 믈라덴 페트리치 등 주력 공격수가 팀에서 나갈것이 거의 확실화되면서 손흥민의 다음시즌 선발 출장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국내팬들은 이 시즌을 계기로 함부르크에 대해 알게 된 경우가 많으므로 막장, 허접팀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구단에서는 리빌딩 기간으로 생각하고 있고, 제 호베르투 등 베테랑들을 심하게 내보낸 여파도 컸다.
희소식으로 라파엘 판데르파르트가 이적해 오면서 공격 전개가 좋지 않었던 함부르크의 한줄기 희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줬다.
기대 속에 시작된 시즌이었지만 함부르크는 초반부터 뭉개졌다. DFB 포칼에선 64강에서 3부리그 카를스루에 SC에게 2:4로 패하면서 일찍 탈락해버렸다. 곧이어 열린 시즌 첫 경기 뉘른베르크와의 안방경기에서 0:1 패배를 시작으로 베르더 브레멘 원정, 프랑크푸르트 원정에서 연속으로 지면서 3연패로 강등권으로 추락해버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4차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안방경기를 3:2로 이기면서 시즌 첫 승을 기록했다. 전 시즌 우승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라는 점과 같이 손흥민이 2골을 기록하며 3골로 팀내 득점 1위로 올라섰기에 한국 축구팬에겐 인상적인 경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승리로 15위로 강등권을 벗어났다. 그 뒤 묀헨글라트바흐 원정에서 2:2, 하노버 96을 안방에서 1:0, 그로이터 퓌르트 원정에서 손흥민 골로 1:0으로 이기면서 7차전을 치룬 현재 리그 8위까지 급속도로 순위가 올랐다. 스튜트가르트에 홈에서 0:1로 패하였으나, 아우크스부르크 원정을 0:2로 승리하며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그 뒤로, 경기마다 1~2골차 승리를 찔끔찔끔 쌓아가더니 2013년 2월 9일(한국시간) 아르툠스 루드네우스와 손흥민 투톱의 활약으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원정에서 4:1로 잡는 이변을 선보였다. 이날 상대팀 공격수였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부진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분데스리가의 상황은 그야말로 전국시대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함부르크는 승점 30점으로 리그 5위를 달리는 중이었지만, 한 경기 덜 치룬 15위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승점차가 7점에 불과했다. 사실상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가 압도적 1위 바이에른 뮌헨과 강등권 팀들 만이 순위가 확정적이라고 할 수 있고, 2위 경쟁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바이어 04 레버쿠젠,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한 단계씩 순위 1점차로 치열했다. 4위권 아래는 5위와 15위의 차이가 7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27라운드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 2:9라는 치욕스러운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함부르크가 7골차 패배를 당한 것은 구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최종순위는 7위를 기록하여 유로파리그 진출권이 걸린 6위와 3점차로 아쉽게 무산되었다. 게다가 득점 랭킹 1위인 손흥민과 아르툠스 루드네우스(둘 다 12골이지만 출전경기가 1경기 적은 손흥민이 1위였다.)가 떠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고 결국 2013년 6월 13일 손흥민은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그나마 루드네우스가 남았지만 13-14 시즌 부상으로 골을 1골도 터뜨리지 못했다.
5. 첫 강등 ..
데미르바이는 1.45m에 호펜하임으로 떠났고 일리세비치, 카차르, 루드네우스 등이 계약연장을 하지 않음으로 무적신분이 되었다. 야로슬라프 드로브니는 함부르크 최대의 라이벌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하며 팬들을 당황시켰다. 이비차 올리치는 1860 뮌헨으로 이적했다.
DFB-포칼 FSV 츠비카우와의 1라운드에서 알렌 할릴로비치의 골이 결승골이 되어 1-0으로 승리하여 2라운드에 진출했다.
리그 1라운드에서는 잉골슈타트를 맞아 전반 30분 우드의 골로 앞서고 있었으나 70분의 실점 이후 추가 득점에 실패하면서 1:1로 비겼다.
2라운드부터 레버쿠젠에 1:3, 라이프치히에게 0:4, 프라이부르크에게 0:1, 뮌헨에게 0:1로 연패를 당하며 1무 4패라는 굴욕적인 성적으로 17위를 기록하게된 함부르크는 결국 9월 25일 브루노 라바디아 감독을 경질했다. 그리고 그 후임으로 마르쿠스 기스돌 감독을 임명했다.
감독 교체에도 6라운드 헤르타 베를린에게 0:2로 패배하며 최하위로 떨어졌고, 7라운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의 경기에선 상대가 페널티킥 2개를 실축하는 행운으로 0:0으로 비기면서 17위로 올라갔다. 글라트바흐는 홈 10연승이 깨졌다.
8라운드 프랑크푸르트전에서도 0:3으로 패하며 2무 6패를 기록, 다시 최하위로 떨어졌다.
DFB-포칼 2라운드에서는 3.리가에 소속되어 있는 할레 셔 FC를 맞아 4:0으로 대승하며 16강에 진출했다. 16강 상대는 1.FC 쾰른이었다.
7라운드부터 3경기 연속으로 선수가 1명씩 퇴장 당하며 경기를 말리게 만들었다. 기스돌 감독 부임 이후 좀 대등한 공격 전개가 가능했다는 현지 팬들의 평가가 함부르크 SNS에 있었으나 수비진이 알아서 경기장을 나가며 무너졌다. 그나마 묀헨글라트바흐전은 0:0 행운의 무승부를 기록헀지만 그 다음을 이은 프랑크푸르트와 쾰른과의 경기에서 연속으로 0:3 대패를 기록했다. 이호 인해 2무 7패 2득점 18실점을 찍으며 3경기 연속으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10라운드 도르트문트와의 경기는 오바메양에게 무려 4골이나 허용하고, 뎀벨레의 골과 합해 2:5로 3경기 연속 3점차 대패를 기록했다. 그나마 니콜라이 뮐러가 2골을 넣으며 영봉패는 면했다. 항상 홈에서 도르트문트만 만나면 이겼던 함부르크가 홈에서 오랜만에 패했다.
3연속 3점차 대패로 인해 2무 8패로 여전히 최하위에 머물게 됐는데, 자칫하면 클럽 역사상 최초의 강등을 경험하는 시즌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스돌 감독은 11라운드를 앞두고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풀백 사카이 고토쿠를 신임 주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11라운드 호펜하임과의 원정경기에서 2:2로 무승부를 거두며 연패는 탈출하여 그나마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오랜만에 선제골까지 넣었다. 하지만 17위인 잉골슈타트도 1승을 거두었으나 함부르크는 여전히 무승 상태였다.
12라운드, 대망의 노르트 더비에서 2:2로 또 다시 무를 캐며 4무 8패로 여전히 무승에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11라운드를 기점으로 경기력이 서서히 나아졌으며, 기스돌 감독 부임이후 공격전개가 괜찮아 졌다는걸 증명하듯이 3경기 연속 2골씩을 넣어주기도 했고, 사카이 고토쿠가 주장으로 선임된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오는데 좋은 수비가담을 보여주면서 불안한 수비진을 어찌어찌 끌고 다니기는 했다. 오른쪽에는 어차피 데니스 디크마이어가 있기도 하고. 공격에는 부진하는 아론 헌트와 피에르-미셀 라소가대신에 미하일 그레고리치가 톱으로, 마티아스 오스트르졸렉이 미들로 나왔다. 하지만 아직 요한 주루와 기데온 융의 수비조합은 아쉬움이 많았다.
13라운드 다름슈타트와의 원정경기에서 2:0 승리로 13경기만에 리그 첫 승을 했다. 그리고 승점 7점이 되어 승점 6점인 잉골슈타트를 넘고 17위가 되었다.
14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막판에 루이스 홀트비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에 처했으나 후반 20분경 상대팀 코어가 퇴장당하고, 얼마 안 가 필립 코스티치가 넣은 골을 끝까지 잘 지켜내며 2연승에 성공했다. 이 경기로 같은 시각 프라이부르크에게 진 다름슈타트를 넘어 16위로 순위가 상승, 자동 강등권에서는 일단 탈출했다.
15라운드 마인츠와의 원정경기에서 바비 우드가 선취골을 넣었으나 이후 라차에게 해트트릭을 얻어 맞으며 1:3으로 패배하며 다시 17위로 미끄러졌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쾰른 수비의 중핵이자 전반기 분데스리가 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로 평가받던 메르짐 마브라이를 영입했고 라이프치히에서 벤치로 밀린 키리아코스 파파도풀로스를 임대해오면서 수비진을 보강했다. 또한 클레베르를 산토스로 이적시켰다. 알렌 할릴로비치는 라스팔마스로 임대이적했다.
후반기를 시작하는 17라운드 볼프스부르크와의 원정경기에서는 0:1로 패했다. 순위는 그대로 16위를 유지했다.
18라운드 잉골슈타트와의 원정경기에서 1:3으로 패하며 순위가 다시 17위로 미끄러졌다.
하지만 19라운드 레버쿠젠을 홈에서 1:0으로 이기며 16위로 다시 올라갔다. 임대로 온 파파도풀로스가 헤더로 결승골을 넣으며 친정팀에 비수를 꽂아버렸다.
DFB-포칼 16강에서 기데온 융과 바비 우드의 골로 쾰른을 2:0으로 이기며 8강에 올랐다. 8강 상대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였다. 1라운드에서 4부리그 팀에게 덜미를 잡히며 탈락했던 전 시즌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20라운드 RB라이프치히 원정.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이프치히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파파도풀로스와 신입생 발라스가 머리로 두 골을 전반에 몰아쳤고, 아론 훈트가 종료직전 3번째 골을 터뜨리며 승리를 확인사살하며 3:0으로 대승을 거두는 이변을 보였다. 니콜라이 뮐러는 도움 헤트트릭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전반기의 굴욕을 갚았다. 때마침 바이언이 잉골슈타트의 늪축구를 종료 직전 두 골로 태워버리며 합작하여, 바이언은 1위 굳히기를, 함부르크는 브레멘을 깔고 15위로 강등권 탈출을 이루었다.
21라운드 프라이부르크전에서 2:2로 비겼다. 순위가 변동되진 않았으나 16위 브레멘과 승점차이가 1점, 17위 잉골슈타트와 승점이 단 2점밖에 차이가 안나서 함부르크 입장에선 굉장히 어려워졌다. 다음 경기를 이겨야 좋은 상황었지만 하필 상대가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그나마 안첼로티 감독 이후 득점력이 줄었다는 게 위안이었다.
하지만 2월 25일 뮌헨 원정에서 결국 뮌헨에게 0-8로 대패를 당했다. 2-9로 패했던 12-13 시즌과 똑같이 0-8로 패했던 14-15 시즌 때처럼 또 다시 뮌헨에게 대패를 당하는 흑역사가 생겨버렸다.
DFB-포칼 8강전에서 묀헨글라트바흐에게 1-2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2골을 먹히고 막판에 바비 우드의 만회골이 터졌다.
바이언 원정에서의 치욕적인 대패에도 불구하고 23라운드 헤르타 베를린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면서 일단 한숨 돌렸다. 포칼에서 부상당한 마브라이의 빈자리를 알빈 에크달이 땜빵했는데 코너킥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수비로 울던 전반기와 달리 후반기 멱살은 중앙 수비로 나온 선수들이 잘 이끌었으며 결국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그동안 부진에 빠져있었던 아론 훈트도 도움을 기록하며 폼을 어느정도 되찾았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24라운드 경기에서는 크리스텐센에게 선제골을 먹혔으나 코스티치와 우드의 골로 2:1로 역전승했다.
25라운드 프랑크푸르트전에서 수비적인 경기로 0:0으로 비겼다. 3경기에서 2승 1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동안 까먹은 승점이 많아서 순위는 16위를 유지했다.
26라운드 쾰른을 홀트비의 극장골로 2:1로 이겼고, 순위가 14위까지 상승하면서 마침내 강등권을 탈출했다.
27라운드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총체적 난국 수준의 공수를 보여주며 3:0으로 패했다. 그나마 순위는 그대로 유지했다.
28라운드 호펜하임과의 홈 경기에서 훈트의 2골을 넣는 활약에 힘입어 2:1로 승리했고, 순위를 13위로 한 층 끌어올렸다.
북독일 라이벌전으로 치뤄진 29라운드 브레멘 원정 경기에서 그레고리치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막스 크루제와 플로리안 카인츠에 연속골을 내주며 1:2로 역전패했다. 홈에서와 달리 원정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30라운드 다름슈타트와의 홈 경기에서 1:2로 패배하며 2연패를 기록해 15위로 떨어졌다.
31라운드 상대가 함부르크와 마찬가지로 강등권 탈출이 절실한 아우크스부르크로, 이 경기에서 패할 경우 강등 플레이오프 순위인 16위로 밀려나게 된다. 결국 아우크스부르크 원정을 떠나 4:0으로 대패하여 3연패를 기록하여 끝내 16위로 밀려나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어진 32라운드 역시 15위 마인츠와의 승점 6점짜리 경기였는데 0-0으로 비기며 16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인츠와 함부르크는 동승점이지만 득실차 격차가 18골이나 나고 있어서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경기였다. 잔여일정은 샬케 원정 - 볼프스부르크 홈경기의 두 경기가 남았다.
33라운드 샬케 원정. 상대 감독이 지난 라운드를 직관하며 벼르고 있었고 메르짐 마브라이가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한 경기였다. 전반 25분 부르그스탈러에게 실점했다. 기스돌 감독은 후반에 발트 슈미트, 미카엘 그레고리츠, 피에르 미셸 라소가를 줄줄이 몰아넣으며 승부수를 던졌다. 샬케가 공들인 역습을 수비수들이 모두 막아냈고 슈팅을 쏟아내며 기어코 라소가가 후반 추가시간 2분에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슈팅 수에서 12개로 두배 앞섰고, 골키퍼 선방은 샬케에서만 나왔다. 이겼다면 잔류를 확정했겠으나, 아쉽게 잉골슈타트만 일단 2부 리가로 보내 놓았다.
승강 플레이오프를 두고 승점 2점 앞선 15위 볼프스부르크를 불러 단두대 매치를 가지게 됐다. 함부르크가 이기면 함부르크가 잔류하며 볼프스부르크나 아우크스부르크 중 한 팀이 플레이오프로 밀려나며, 비기거나 지면 함부르크가 2년만에 승강 플레이오프로 향하게 된다. 니콜라이 뮬러가 복귀한 만큼 홈인 폴프스파르크 슈타디온에서 마지막 칼을 갈게 되었다.
클럽 역사상 첫 강등된 부르크 역사상 최악의 시즌으로, 그동안 숱한 강등 위기를 넘겨왔던 함부르크에 있어서 굴욕적인 시즌이었다.
최근 시즌 출발이 대부분 좋지 않았던 것에 반해 이번 시즌은 2연승을 하며 팬들에게 큰 기대가 굉장히 높았다. 최소한 이번 시즌 만큼은 지난 시즌처럼 턱걸이 잔류는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설레발이긴 했지만 유로파 진출까지도 바라봤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연패를 당하며 지난 시즌과 다를 게 없어졌다. 그리고 전반기에 8경기 연속 무승, 후반기에 15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하며 무, 패 행진을 달렸다. 시즌 막판에야 정신 차리며 잔류의 불씨를 살렸으나, 그마저도 프랑크푸르트에게 0-3으로 대패하며 자력 잔류가 불가능해졌고, 마지막 4경기에서 3승 1패라는 성적을 거두고도 끝내 다이렉트로 강등당했다.
이로써 함부르크의 상징이었던 시계는 54년 262일만에 멈췄고 함부르크는 독일 1부 리그에서 출범 원년 참가팀이면서 강등 당한 적이 없던 유일한 프로팀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게 되었다. 또한 분데스리가에 가장 많이 출석한 팀이라는 타이틀도 강등당하며 라이벌 브레멘과 타이를 이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