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터밀란이란..
풋볼 클래브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Football Club Internazionale Milano S.p.A., 통상 인테르로 불리며, 영어권에서는 인터 밀란[1][2])[3]는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 리그인 세리에 A에 소속되어 있는 축구 클럽이다. 별칭으로 유니폼이 검은색/파란색 줄무늬의 이탈리아어인 네라추리(Nerazzurri)라고 불린다. 명칭 중의 연고지 표기인 "밀라노"는 생략하는 경우가 있으나, 수식어인 "인테르나치오날레"는 경쟁팀인 AC 밀란과 구별하기 위해서 줄여서라도 반드시 언급한다.(예: 영어로 Inter Milan)
1908년 3월 9일 AC 밀란에서 독립하여 창단하였다. 유벤투스 FC, AC 밀란과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전통의 명문클럽이다. 지금까지 세리에 A에서 18회의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이는 유벤투스 FC 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3회(준우승 2회), UEFA컵에서 3회 우승하였다. 연고지는 롬바르디아주 밀라노이며, 홈 구장은 85,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이다. 경기장 이름의 유래가 된 주세페 메아차는 과거 인테르에서 뛰었던 위대한 축구 선수 중 하나이다.
인테르는 세리에 A가 출범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강등된 적이 없으며, 이는 이탈리아 클럽 내에서 유일한 기록이다. 인테르는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카테나치오 전술에 힘입어 1963~1964, 1964~1965년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였으며 이 때를 가리켜 이탈리아에서는 'La Grande Inter', '위대한 인테르'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에서 인테르 외엔 이렇게 불리는 팀은 40년대에 세리에 5연패를 한 토리노 FC가 유일하다.
지역 라이벌인 AC 밀란과의 경기를 가리켜 이탈리아어로는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Derby della Madonnina), 밀라노 더비라고 한다. 그리고 세리에 A에서 인테르 다음으로 강등된 시즌이 적은 유벤투스 FC와의 경기를 가리켜 이탈리아어로 데르비 디탈리아(Derby d'Italia), 이탈리아 더비라고 한다.
세리에 A 2009-10를 우승 하여 2005년부터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다. 또한 이 시즌에 코파 이탈리아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이탈리아 최초로 트레블을 이루게 되었으며, 유럽에서 역대 6번째로 트레블을 이루게 되었다.
2. 클럽 창단과 발전
인테르는 1908년 3월 9일에 AC 밀란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이탈리아인과 영국인만을 받는 AC 밀란의 정책에 반대하여 모든 외국인들에게 개방되어있는 클럽을 만들고자 이름도 이탈리아어로 ‘국제’란 뜻의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짓는다. 이 때 인테르를 만든 사람들은 클럽의 로고를 만든 지오르지오 무기아니와 보사르드, 라나, 베르톨로니, 데 올마, 엔리코 힌테르만, 아르투로 힌테르만, 카를로 힌테르만, 피에르토 델로노, 휴고, 한스 리에트만, 보에켈, 마네르, 위프, 카를로 아르두시이다.
1910년에 첫 번째 스쿠데토를 땄으며, 그리고 1920년에 두 번째 스쿠데토를 딴다. 비르질리오 포사티가 인테르가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하였을 때의 주장이자 감독이었으며,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군의 전쟁에서 사망하였다. 1922년에는 C.C.I.의 세리에 A B조에서 단지 11점만을 획득하여 최하위 순위를 기록하였다. 각 조의 최하위 팀은 강등당해야 되었다. 그러나 다시 리그가 합쳐지면서 인테르와 라 가제타 델로 스포츠의 편집장인 콜롬보가 FIGC에게 세리에 B는 재정에 해로우므로 다음 해에도 세리에 A에 참가할 수 있도록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FIGC는 이를 인정하여 인테르가 1923년에 세리에 A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파시스트가 권력을 잡은 1928년에는 강제로 밀라네세 우니오네와 합병되었으며 이름도 암브로시아나 SS 밀라노로 바뀌었다.[4] 이 당시에 그들은 하얀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셔츠를 입었다. 이 디자인은 4세기부터 밀라노의 후원자였던 암브로세 성자의 깃발에서 유래된 밀라노의 깃발과 군대의 옷에서 따왔다. 새 회장이 된 오레스테 시모노티는 1929년에 AS 암브로시아나로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하였으나, 서포터들은 계속해서 클럽을 “인테르”로 불렀으며 그리고 1931년 새로운 회장 포조니는 주주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이름을 AS 암브로시아나 인테르로 다시 바꾼다.
주세페 메아차의 활약으로 1929-30, 1937-38, 1939-40을 우승하고, 1938-39 시즌에 팀 역사상 첫 번째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하였다. 1940년에는 주세페 메아차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5번째 리그 우승을 기록한다. 이러한 주세페 메아차의 공을 기리어 그의 이름은 산 시로 경기장의 공식 이름으로 남아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클럽은 원래의 이름이었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바꾸고 이후에도 계속 이 이름을 유지하였다.
3. 라 그란데 인테르
전쟁 후에 인테르나치오날레는 1953년, 54년에 연속으로 스쿠데토를 따낸다. 이 타이틀 이후에 인테르는 그들의 역사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 중 하나인 라 그란데 인테르, 위대한 인테르로 이름붙인 시대가 찾아온다. 이 기간 동안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 하에, 인테르는 3개의 스쿠데토를 따낸다.(1963, 1965, 1966) 이 10년 간 가장 중요한 것은 1964년과 1965년 연속으로 유로피언 컵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첫 번째 우승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따내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은 그들의 홈 경기장에서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였던 SL 벤피카를 꺾으면서 연속 우승을 하였다. 1966-67 시즌에도 인테르는 결승까지 올라왔으나 리스본에서 셀틱 FC에게 2-1로 패배하였다.
라 그란데 인테르 이후의 시기[편집]
황금기였던 1960년대를 지난 후, 인테르는 1971년에 11번째 스쿠데토를 차지했고, 1980년에 12번째 스쿠데토를 따냈다. 또한 1972년에 5년 만에 유러피언컵 결승에 진출하였지만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AFC 아약스에게 2-0으로 패배하였다. 또한 인테르는 1977-1978년과 1981-82년에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하였다.
독일 듀오 안드레아스 브레메와 로타어 마테우스, 아르헨티나인 라몬 디아스의 활약으로 인테르는 1989년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하에서 스쿠데토를 따낸다. 여기에 브레메, 마테우스의 대표팀 동료인 위르겐 클린스만이 합류하면서 수페르코파나 이탈리아나를 우승하였지만 리그 우승 타이틀을 방어하는데는 실패하였다.
나머지 이야기는 2탄에서..
'축구팀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라도나의 팀인 SSC 나폴리 역사를 알아보자 제 1탄 !! (0) | 2023.04.28 |
---|---|
인터밀란의 역사를 알아보자 제 2탄 !! (0) | 2023.04.27 |
AC밀란의 역사를 알아보자 제 2탄 !! (0) | 2023.04.27 |
AC밀란의 역사를 알아보자 제 1탄 !! (5) | 2023.04.27 |
세리에A 최고 명문팀 유벤투스의 역사 2탄 !! (5) | 2023.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