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SG 의 80년대 분위기
1960년대 후반, 당시 파리를 연고지로 둔 축구 클럽은 1896년에 창단된 라싱 클뢰브 드 프랑스라는 종합 스포츠클럽과 레드 스타 FC, 스타드 프랑스 등이 있었다.
그런데 '라싱 파리'가 1969년 리그를 탈퇴하며 프로축구 부문에서 완전 철수를 계획하고, 다른 클럽들도 강등이나 클럽 해체를 이유로 파리가 연고지인 1부 리그 소속 클럽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수도 파리에 '빅클럽'을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가가 형성되어 파리 FC가 창단되었고, 다음 해인 1970년, 스타드 생제르맹과 파리 FC가 병합을 발표하고 약 2만 명의 서명을 얻어 탄생한 것이 바로 파리 생제르맹 FC의 탄생이다.창단 당시에는 장폴 벨몽도 등 파리 출신의 유명인들과 기업들이 자금 지원과 많은 응원을 보내왔지만, 출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우선 전신 클럽이 파리가 연고지였고, 파리 FC와 병합을 함에도 PSG의 연고지는 파리가 아니었다. 바로 지금의 파리 외곽인 생 제르맹 앙 레를 연고지로 한 것. 당시 파리 시와 15km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때문에 또다시 1부 리그 소속 클럽이 없어진 파리시는 PSG에 대한 기업들의 자금 원조를 막았으며, 결국 1970-71 시즌 2부 리그 우승으로 1부 리그에 속할 예정이었던 PSG는 아마추어 클럽(당시 프랑스 3부 리그인 디비시옹3에 소속되었다.)으로 이름을 유지한 채 떨어져나왔고, 파리 FC는 예정대로 리그 1에 남아 2개의 클럽으로 다시 나뉘어졌다.
3부 리그에 소속되었으나, 파리 시민 2만여 명의 서명까지 받으며 창단되었다고 상술했듯이 파리지앵들의 선택을 받은 건 파리 FC가 아니라 이미 PSG였다.PSG는 파리의 사교계 유명인들까지 등에 업고 급성장 하였으며, 1973-74 시즌 이후에 다시 리그 1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정작 그 해 리그 1에 남았던 파리 FC는 2부로 강등되었다. 파리 FC가 강등당하면서 1974년까지 홈구장으로 사용하던 파르크 데 프랭스는 PSG의 홈구장이 되었다.
1970년대 후반 PSG는 생 제르맹 앙 레가 파리에 속하게 되며 이제 파리시에게 홀대받을 이유조차 없어졌고, 1970년대 말까지 리그 1에서 버티며 클럽의 토대를 닦았다.
대한민국 국내에선 PSG도 강등당한 적이 있다며, 상술한 1972-73 시즌의 디비시옹 3 소속을 근거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강등(Relegate)'이 아닌 '재소속(Restart)'의 개념으로 보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창단 이후 한 번도 강등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Which European football clubs have never been relegated? :: 더 가디언, 단 한 번도 강등당하지 않은 유럽의 축구 클럽들은?
A brief history of PSG :: ESPN, 간단한 PSG 역사
한편 파리 FC는 강등 이후 리그 1 강등권과 리그 2에서 전전하다가 1983년, 전술한 '라싱 파리'와 병합/분할되어 프랑스 4부 리그까지 강등당한다. 분할된 팀 중 하나는 5부까지 강등되었다. 2019-2020 시즌 기준, 파리 FC는 현재 2부 리그 2 소속이다. 근데 승강팀이고 작년까지만 해도 프랑스 3부 리그 샹피오나 나시오날에 속했었다.
1978년에 취임한 프랑시스 보렐리 회장에 의해 클럽은 빠르게 성장하여 루이스 페르난데스, 도미니크 바라텔리, 도미니크 로슈토 등을 축으로 1981-82 시즌에 쿠프 드 프랑스 결승에 올라 우여곡절 끝에 클럽 역사상 최초의 주요대회[4] 우승을 하게된다. 1982-83 시즌에도 대회 2연패 달성.
1985-86 시즌에는 제라르 울리에 감독이 취임하고 AJ 오세르로부터 조엘 바츠를 영입하여 창단 16년 만에 팀 역사상 최초로 리그 1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90년대가 되자 파리의 본격적인 첫번째 전성기가 시작된다.
2. 90년대 첫번째 전성기 시작 !!
1991년 5월에 카날+ 방송사가 클럽을 인수한 뒤, 공격적인 투자로 강팀이 되어 1992-93 시즌 UEFA 컵과 1993-94 시즌 UEFA 컵 위너스 컵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잡고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킨다.
특히 1994년에 파리는 통산 두 번째 리그 1 우승을 달성하였는데, 파리의 최대 라이벌인 마르세유는 전 시즌에 벌인 승부 조작을 들키게 되고, 파리에 밀려 우승을 놓친것도 서러울 지경인데 전 시즌 리그 1 우승 타이틀 박탈이라는 중징계와 함께 강등을 당하게 되어서 파리 입장에선 겹경사를 치렀다.
그렇게 리그에서 걸리적거리던 라이벌을 제거한 파리는 대망의 1994-95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다시 모습을 보이게 되었고, 조지 웨아 ,히카르두 고메스, 하이 , 다비드 지놀라, 폴 르갱, 앙투안 콩부아레, 뱅상 게랑, 다니엘 브라보, 베르나르 라마 등등 주축 선수들이 뛰어난 호흡을 보여주며 PSG는 8년 전 첫 출전 때와는 180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조별 리그에서 같은 조였던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홈, 원정 안 가리고 모두 이겼고, 뮌헨전 2승을 포함하여 러시아의 강호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 우크라이나의 강호 FC 디나모 키예프를 상대로도 2승씩 거두며 도합 6전 전승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8강에 진출, FC 바르셀로나까지 쓸어버리며 팀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진출이라는 업적을 달성하였다. 현재에 들어 레바뮌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낼정도로 유럽의 삼대장이라 불릴만한 팀들이 90년대엔 모두 파리에게 스윕당했다는점이 흥미롭다.
준결승전에선 밀란에게 완패를 당했지만, UEFA 컵, 컵 위너스 컵, 챔피언스 리그에서 연속으로 준결승 진출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1996, 1997년에는 2연속 컵 위너스 컵 결승 진출에 힘입어 UEFA 공인 클럽 랭킹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1998년에 미셀 데니소트 회장이 떠난 뒤 팀은 재정과 성적면에서 하락세로 접어드는 국면을 맞이했다. 이에 따라 팀을 주름잡던 스타 선수들은 하나둘씩 떠났고, 빚은 122억 유로로 뛰어올랐다.
3. 2000년대 침체기...
2000년대 내내 쿠프 드 프랑스에선 세 번이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정작 리그에서는 이름값에 걸맞는 포스를 보이지 못했다.
2000-01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니콜라 아넬카가 이적, 2001년에는 브라질 클럽으로부터 호나우지뉴를 영입한다. 호나우지뉴는 2003년까지 팀에 있었는데 주요 출신 선수 부분에 후술된 바와 같이 각종 문제로 3000만 유로라는 생각보다 싼 값에 FC 바르셀로나로 가게 된다.
호나우지뉴가 떠난 2003년, 1,200만 유로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이전의 PSG 최고의 공격수였다고 회자되는 파울레타를 영입한다. 파울레타는 2008년까지 다른 클럽의 러브콜에도 PSG에 남아 리그 1 득점왕 2회를 차지하며 좋은 활약을 해준다. 물론 그의 마지막 시즌인 2008년엔 16위[9]로 강등권을 아슬아슬하게 탈출하는 등 좋지 않았지만, PSG에게 좋은 추억이 많은 대회인 쿠프 드 프랑스 2회 우승, 쿠프 드 라 리그 1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PSG의 클럽 통산 100득점 또한 파울레타가 달성하였다.
한편 파울레타의 활약에도 불구, 망하기 직전 같던 구단 재정은 카날+가 2006년에 2,600만 유로라는 싼 값으로 콜로니 캐피털(부동산 투자회사), 버틀러 캐피털 파트너스(개인투자회사), 모건 스탠리에 주식을 매각하면서 해결했다.
이후 카날+가 손을 뗀 뒤 PSG는 심각한 재정난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에미레이트 항공이 메인 스폰서가 되었고, 파울레타가 떠나는 2008년에 스폰서 계약을 2014년까지 갱신하였다.
팀 에이스는 떠나고 구단주는 공석에 메인 스폰서는 새로 구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 시즌 리그 16위라는 성적표를 들고 2008-09 시즌을 맞이한 PSG는 리그 초중반까지는 우승경쟁을 했지만 6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챔스 진출권도 놓치며 아쉬운 마무리를 하였다. 그래도 강등 걱정 안 한 게 위안이라면 위안. 이때쯤 카날+가 주식을 매각했던 회사 중 하나인 콜로니 캐피털이 모건스탠리로부터 PSG 주식 보유분의 95%를 구입하며 구단주가 되었다.
2009-10 시즌엔 또 쿠프 드 프랑스에서 8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 시즌의 FA컵 우승은 PSG의 여자축구단인 PSG 페미닌도 동시에 이룬 것이라 의미가 크다. 동일 클럽의 남녀팀이 쿠프 드 프랑스를 동시에 석권한 것은 프랑스 최초였기 때문.
트로피는 몇 개 들었지만 리그 등 근 10년간 그저 그런 성적을 낸 팀은 2010-11 시즌을 기점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클로드 마켈렐레나 그레고리 쿠페, 루도빅 지울리 같은 노장 선수들을 참 잘 활용하면서 마마두 사코, 클레망 샹톰과 같은 재능 있는 유스 출신 선수들도 동시에 1군으로 올라와서 주전 확보를 하였으며, 특히 AS 모나코에서 이적해 온 안데르손 네네의 사기적인 활약이 부흥에 큰 도움을 주었다. 실제로 2010-11 시즌 네네가 윙어 자리에서 엄청난 활약을 뽐내던 전반기의 PSG는 거의 우승 후보 1순위급 경기력을 선보였다. 다만 스쿼드 뎁스가 얇은 관계로 후반기에 들어 거의 전 경기 풀타임을 뛰던 네네의 과부하로 인하여 팀 전체의 경기력도 현저히 감소하여 끝내 4위로 추락했다.
나머지 역사는 2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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